판문점 견학

주요시설

JSA 약도 - 72시간 다리(북한측), 통일각(북한측), 경비병 막사(북한측), 판문각(북한측),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T1/T2/T3), 기념식수(유엔사측), 도보다리 (유엔사측), 군사분계선, 돌아오지 않는 다리(유엔사측), 평화의집(유엔사측), 자유의집(유엔사측), 경비병막사(유엔사측)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자유의집

‘자유의집’은 판문점 내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북측 ‘판문각’에 대응하는 우리측의 최북단 시설로 남북 적십자사 간 연락 및 회담지원 업무를 하는 곳입니다.

최초 ‘자유의집’은 1965년 9월 30일 준공되었으며, 길이 35m, 넓이 8m의 2층 2개동(연면적 397㎡)으로 건물 중앙에 팔각정을 두었습니다. 이후 1998년 현재의 지상 4층, 지하 1층, 연면적 4,742㎡ 규모로 개축하였습니다.

1971년 9월 남북적십자회담 상설 연락사무소가 설치되고 직통전화 2회선이 가설된 이후 자유의집은 우리 측의 각종 대북 연락업무를 수행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1998년 신축 이후에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발효에 따라 ‘평화의집’에 설치되었던 ‘남북연락사무소’가 이 곳으로 옮겨져 2018년 9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설치될 때까지 당국 간 연락업무도 이 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이 곳에는 회담시설도 갖추어져 있어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남북 간 회담 및 접촉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1985년 북측의 통일각이 건축되고, 1989년 우리 측의 ‘평화의집’이 건축된 후에는 남북 간 회담을 주로 ‘평화의집’과 ‘통일각’에서 교대로 개최하여 왔습니다.

2019년 6월에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동도 이 곳 ‘자유의집’에서 가졌습니다.

자유의집 1
자유의집 2
자유의집 3
자유의집 4

평화의집

‘평화의집’은 1980년대 이후 남북 간의 회담이 활발하게 진행됨에 따라 우리 측의 회담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1989년 12월 19일 준공한 우리측 회담시설입니다. 지상 3층, 지하 1층(연면적 3,293㎡) 규모로 1층은 귀빈실과 기자실, 2층은 회담장, 3층은 연회실로 되어 있습니다.

2019년까지 100회의 남북 간 회담이 이곳에서 개최되었습니다. 특히 2018년 4월 27일 이 곳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우리 측 지역을 방문하여 회담을 가졌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회담이었습니다.

‘평화의집’에서는 한때 남북 당국 간 연락업무도 수행했었습니다. 1992년 2월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됨에 따라 그해 9월 우리 측은 ‘평화의집’에, 북측은 ‘통일각’에 각각 사무소를 두고 직통전화나 연락관 접촉 등을 통해 연락을 주고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당국 간 연락업무와 적십자 간 연락업무가 분리되었습니다.

우리측은 1998년 신축된 ‘자유의집’으로 연락사무소를 옮겼으며,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등 남북관계 상황 변동에 따라 연락사무소 폐쇄와 복원이 반복되었습니다.

평화의집

판문각

판문각은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우리 측 ‘자유의집’을 마주보고 있는 북측 시설로 북측 적십자 연락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으며, 북측 관광객들이 판문점 남측지역을 조망하는 곳입니다.

북한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12년간 판문점을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다가 1964년부터 공개하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판문각 자리에 육각정을 지었으나, 1969년 9월 육각정을 헐고 ‘판문각’을 2층 건물(연면적 860㎡)로 신축하였습니다.

북한은 1994년 5월 24일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를 설치한 후 그 해 8월부터 12월까지 판문각 증축 공사를 시작하여 3층으로 한 층 높이고, 폭을 확장하여 연면적 2,149㎡ 규모의 건물로 완공하였습니다.

북한은 판문각에 1971년 9월 남북적십자회담 북측 상설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여 남북 간 수시 연락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판문각

통일각

통일각은 남북회담을 위해 세워진 북측 회담시설로 1985년 8월 지상 1층, 지하 1층 연면적 1,521㎡ 규모로 준공되었으며, 이후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개최되는 회담은 대부분 이 곳에서 개최되었습니다.

2018년 5월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 개최된 곳도 이 곳 통일각입니다.

1992년 9월 ‘남북연락사무소’ 북측 사무소가 설치되어 남북 당국 간 연락업무를 수행하였으나, 2000년 북측이 연락사무소를 ‘판문각’으로 이전함으로써 현재 북측 지역 회담시설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통일각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T2)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은 정전협정 체결 후 현재 판문점 위치를 공동경비구역으로 설정하고, 군정위 기구들이 회의실로 사용하기 위해 군사분계선 위에 가건물 7개동을 설치하였습니다. 그중 회색 4개 동은 북한 측이 관리하고, 가운데 하늘색 3개 동은 유엔사측이 관리하는 건물입니다.
이 하늘색 3개 동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각각 T1, T2, T3로 불리는데, T는 임시로 쓰는 가건물(Temporary)이라는 뜻입니다. 이 중 T1은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T2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 T3은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로 사용되며, 그 중 가운데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T2)은 관광객 출입이 가능합니다.

T2 회의실은 남북이 공유하며 양측 관광객 모두 입장이 가능한 곳으로 서로 중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선착순으로 입장이 가능합니다. 관광객이 T2 회의실에 들어가면 건물 내외부를 해당 관광객 측이 경비를 하면서 관광객의 안전을 보장하게 됩니다.

원래 공동경비구역 내에는 군사분계선이 없었고 상호왕래가 자유로웠으나,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으로 공동경비구역 내에도 군사분계선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원칙적으로 남북은 군사분계선을 넘을 수 없으나, T2 건물 내부만이 유일하게 군사분계선을 넘을 수 있는 곳입니다.

T2와 T3 사잇길(폭 4m)은 자유의집과 판문각 정중앙에 위치하며, 남북 정상 및 남북미 정상이 만난 곳입니다. 방북 인사가 돌아오거나 북측 인사를 송환할 때도 주로 이 곳을 이용합니다.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T2) 1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T2) 2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T2) 3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T2) 4

남북정상 기념식수 장소

기념식수 장소는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이 정전 65년 동안 대결과 긴장의 땅이었던 군사분계선 위에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는 소나무를 함께 심은 곳입니다. 남북 정상이 최초로 공동 식수한 소나무는 한반도 전역에 고르게 분포하고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나무로, 군사분계선이 갈라놓은 백두대간의 식생을 완전하게 복원해 나간다는 의미로 선정하였습니다.

이 소나무는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던 1953년생으로, 정전 65년의 아픔과 함께 해왔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는 첫 걸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남과 북의 평화와 협력의 의미를 담아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을 가져와 합토하고, 한강과 대동강의 물을 함께 뿌려 주었습니다. 또한 표지석은 파주의 화강암으로, 서체는 한글서예의 대가이자, 2014년 한국미술상을 수상한 효봉 여태명 선생의 글씨로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는 글귀로 각인되었습니다.

문구는 문재인 대통령께서 직접 정한 것입니다. 공동식수 행사는 남측이 제안하고 북측이 수용하여 진행되었습니다.

공동기념식수 후 문 대통령은 “소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라 평화와 번영을 심은 것”이라고 하였고, 김정은 위원장은 “어렵게 찾아온 북과 남의 새봄을, 그 이후를 소중히 하고 잘 키워나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공동 기념 식수 장소 1
공동 기념 식수 장소 2
공동 기념 식수 장소 3

도보다리

도보다리는 군사분계선 남쪽에 위치한 중립국감독위원회 캠프에서 정전협정기구 회의실(T1, T2, T3)까지 갈 수 있는 지름길로, 이동 동선을 줄이기 위해 습지 위에 건설되었습니다.

걸어 다니는 다리라는 뜻에서 ‘Foot Bridge’로 불렸는데 그대로 번역하여 ‘도보다리’가 되었습니다. 유엔사 측 시설물이기에 다리 색깔은 유엔의 상징 색인 하늘색으로 칠했으며, 최근에는 Blue Bridge라고도 합니다.

도보다리는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친교 산책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도보다리 전체 모양은 처음에는 단순 일자형이었으나 정상 간 담소를 나눌 공간 확보를 위해 중간을 돌출시켜 T자형으로 확장하였습니다.

두 정상이 담소를 나누었던 ‘티 테이블’ 옆에는 심하게 녹슨 군사분계선 표지물이 있습니다. 원래는 ‘군사분계선’ ‘0101’이라고 쓰여 있었으나, 부식이 너무 심해 현재 판독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군사분계선 표지물은 임진강하구에서 동해안까지 약 200m 간격으로 1,292개가 설치되었고, 도보다리 옆 표지물은 101번째라는 뜻입니다. 정상회담 당시 유엔사 측에서는 군사분계선 표지물을 새 것으로 교체하려 했으나, 우리 측에서 분단의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옛것을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도보다리 1
도보다리 2
도보다리 3
도보다리 4

돌아오지 않는 다리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서쪽이자 우리 측 ‘평화의집’ 뒤쪽인 사천강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다리 중간이 군사분계선이며, 사천강을 따라 군사분계선이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휴전협정 조인 후 포로 교환이 이루어지자 양측 포로들이 이 다리를 통해 남쪽과 북쪽으로 송환되었습니다. 송환되는 포로들은 일단 이 다리만 건너면 그 누구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고 해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1976년 8월 18일 유엔사 경비병이 이 다리 부근의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중 북한 경비병이 도끼를 탈취하여 유엔사 경비병을 공격하여 미군 장교 2명이 살해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엔사 측은 문제의 미루나무를 베어내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폐쇄하였습니다.

1976년 8월 28일부터는 양측 경비병 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분할경비제도」가 채택되어 공동경비구역 내에 군사분계선이 설정되고 상대측으로의 출입이 금지되었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72시간 다리

72시간 다리는 1976년 미루나무 사건으로 북한군이 공동경비구역 출입시 이용하던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폐쇄되자 통일각 뒤쪽에 우회 다리를 급히 건설하였습니다. 이 다리를 72시간 만에 건설하였다고 하여 ‘72시간 다리’라고 부릅니다.

현재 이 다리는 북측에서 판문점으로 들어오는 통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72시간 다리